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으로 알아본 엽관제의 뜻과 유래 및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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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으로 알아본 엽관제의 뜻과 유래 및 현재

by dkslsiem&&I* 202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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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으로 알아본 엽관제의 뜻과 유래 및 현재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에 검찰 수사관으로 함께 일했던 사람의 아들, 40년 지기이자 여당 원내대표 지역구 주민의 아들, 문재인 대통령 자택 앞에서 시위하는 유튜버의 누나를 대통령실에 채용하면서 '사적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달 대통령실의 시민사회수석인 강승규 수석이 연이어 터지는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거론된 '엽관제'가 연일 관심을 받고 있다. 

 

엽관제(spoils system , 獵官制)의 뜻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선거 운동원과 그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에게 승리에 대한 대가로 관직에 임명하거나 다른 혜택을 주는 관행.  엽관제는 공무원이 자신의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활동과 자신들의 정당이 선거에서 패했을 때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엽관제의 유래

엽관제는 영국에도 있었지만 초기 미국에서 특히 발달했다.  이는 이 제도가 미국 정치상황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인디언'으로 불리는 토착민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그 위에서 새로 시작한 미국 정치 문화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이다.

 

미국은 토착 문명이 파괴된 상태에서 연방국가 시스템이 세워졌다. 이것이 엽관제의 토양이 됐다.  일반적으로 신생 국가들은 이전 국가의 관료기구를 승계하거나 활용한다. 하지만 인디언을 조직에 채용할 수 없었던 초창기 미국은 관료기구를 새로 구축하기 위해 신입 관료들을 끊임없이 충원해야 했다.  그런데 '주'의 독립성이 강한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주'와 '연방'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뉘어져 있던 연방 국가를 하나로 이어준 것이 바로 '정당제도'였다. 정당들은 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합중국을 하나로 연결해 주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주'는 물론 '연방'의 관직까지 사실상 독점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이후 제 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1829~1837년) 때 엽관제는 더 체계화되고 안정화되었다. 나이젤 보울스(Nigel Bowles) 옥스퍼드대학 교수와 로버트 맥마흔(Robert McMahon) 래들리 칼리지 교수가 공저한 <미국 정치와 정부>(2016)에 의하면 ' 앤드류 잭슨 이전까지 모든 대통령들의 첫 번째 행동은 행정부 내의 모든 공직자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증명된 충성심을 가진 자들, 혹은 자신들이 정치적 부채를 진 지지자들이 추천하는 자들을 앉히는 것이었다'라고 적혀있다. 

 

 엽관제라는 용어는 1832년 뉴욕 주 상원의원 윌리엄 마치(William March)가 한 연설로 유명해졌다. 그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행한 관료임용을 옹호하면서 '적에게서 얻은 전리품(spoils)은 승리자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에서 전리품 제도 혹은 약탈품 제도를 뜻하는 '스포일스 시스템(spoils system)'이 생겨났다.  '관직을 사냥한다'로 직역한 표현 '엽관(獵官)은 영어식 표현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엽관제의 명과 암

당시의 엽관제는 상류층이나 특권층 자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이 공인하는 자격을 갖지 않았더라도 집권정당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중류층 이하 자제들에게도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측면이 있었다. 관직의 경직성과 특권화를 배제하여 관료 제안에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또한 공직자의 적극적인 충성심이 확보되고 해당 정권 안에서 업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정당이 바뀔 때마다 인사가 바뀌게 되면 관료의  전문성을 갖추기가 힘들어지고 특정 조건이나 능력을 보고 하는 인사가 아니므로, 정당 자신의 이득이나 인맥을 위한 부정부패하고 무능력한 낙하산 인사가 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엽관제의 현재

엽관제는 1820년대부터 미국 남북전쟁까지 번성해왔다.  그러나 19세기 중후반부터 미국인들은 연관제의 부조리를 심각하게 인식해 왔다.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 엽관제 남용은 임명된 관리의 숫자를 줄이고 실적본위로 직책을 임명하자는 공무원 제도 개혁을 촉진시켰다.  

 

미국에서는 엽관제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1881년 3월 4일 취임한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대통령은 임기를 6개월밖에 채우지 못했다.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취임 후 관직 임명 제도를 개선하고자 4개월간 노력해왔는데, 7월 2일 찰스 귀토(Charles Guiteau)라는 사람의 총에 맞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그해 9월 사망하게 되었다.

미국의 일러스터인 프랭크 레슬리가 <일러스트레이티드신문>에 개제한 제임스 가필드암살 사건 삽화

이 사건을 연구한 역사가들은 찰스 귀토를 '관직을 구하려다 실패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찰스 귀토는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에게 '파리 주재 영사'자리를 달라고 몇 달 동안 따라다녔지만 무시당하자 대통령 암살이라는 큰일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1888년 펜들턴 연방공무원법은 연방 공무원의 임용을 실적제로 바꾸었다.  물론 그 뒤에도 엽관제의 문제는 해결되 않았다.  엽관제는 당 지지자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공직 임명이라는 의미 외에도 집권당이 행사하는 다른 권력 남용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 실적제란? (Merit system)

학력이나 학벌, 연고 따위와 관계없이 본인의 실적만으로 평가되는 제도, 능력과 자격 위주로 공무원을 임용하는 제도이다. 

 

엽관제는 미국에서 쓰이는 정치용어지만, 당 지지자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공직 배분과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정부를 강화하려는 이와 같은 관행은 현재까지도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실의 '사적채용' 논란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엽관제'를 들먹였다.  이 논란의 본질은 비공개냐 아니냐, 절차를 밟았느냐 안 밟았느냐가 아니다.  미국의 엽관제는 '정당'과 '국가'라는 공적 기구를 전제로 했다.  그 시절에도 사적인 인연에 기반한 채용은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현재 논란의 핵심은 사적 인연이 대통령실 직원 채용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냐이다.  사적 인연에 대한 해명은 하지 못한 채 대선 때 활동한 이력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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